일제강점기 허무와 낭만을 시로 노래한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1908 ~1967)이 독도를 찾아 독도의 아픔을 노래한 시가 발굴됐다. 1956년 9월 5일 조선일보 석간에 실렸던 ‘독도여’라는 제목의 시는 1948년 발행된 청마의 시선집 ‘울릉도’를 비롯해 기존 청마 시집에는 실리지 않아 전문가들도 그동안 이런 시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해당 작품을 찾아낸 동북아역사재단 홍성근 연구위원은 “독도에 가보지 않았으면 쓸 수가 없는 시”라며 “한국전쟁 등 광복 후 갖가지 수난에서 비롯된 민족의 아픔을 청마가 독도에서 찾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독도여’에는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나 앞을 보지 못하는 눈(靑盲) 같은 세월을 견뎌낸 독도를 바라본 순간의 감동이 담겨 있다.
“무슨 저주가/ 이 같은 절해에 너를 있게 하였던가/ 종시 청맹(靑盲) 같은 세월과/ 풍랑의 허망에 깎이고 찢기어/ 한 포기 푸새도 생명하기 힘겨운/ 독올(禿兀) 불모(不毛)한 암석만의 편토(片土)/ 다시 갈 곳 없으매/ 갈매기도 마침내 해골을 바래(曝)는 곳/ 그러나 진정 너의 욕(辱)됨은/ 이 유당(流黨)의 고절(孤絕)에 있음이 아니거니/ 제 모국에서 분노가 오늘처럼 치밀 제는/ 차라리 너 되어 이 절해(絶海)에 이름 견디고저”
김화순 청마기념관장은 ‘독도여’를 접한 후 “1948년 발행한 시선집 ‘울릉도’에는 실리지 않은 작품으로 이번에 처음 존재가 확인된 시”라며 “청마가 ‘독도’를 소재로 시를 썼다는 사실에 지역 문인들이 크게 놀랐다”고 했다. 김 관장은 또 “청마는 시대의 혼란기에 지식인으로서 침묵하지 않은 등불 같은 시인이었다”며 “나라가 어수선할 때 독도를 노래했다니 청마가 다시 살아난 듯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발굴된 ‘독도여’를 주목해야 할 이유를 세 가지로 꼽았다. 우선 독도에 가보지 않았으면 쓸 수 없는 시라는 점이다. ‘독도여’는 1956년 8월 31일부터 9월 5일까지 조선일보에 게재된 울릉도를 노래한 연작시 중 하나로 보인다. 청마는 1956년 8월 31일 조선일보 4면(석간)에 ‘정결한 왕국’(울릉도시초(詩抄) 1에 수록)을, 1956년 9월 1일 4면(석간)에 ‘당개나리꽃’(울릉도시초 2)을, 1956년 9월 3일 4면에 ‘야월 도동(夜月道洞)’(울릉도시초 3)을, 1956년 9월 4일 4면(석간)에 ‘한바다 복판에서’(울릉도시초 4)를 연이어 게재했었다. 1956년 9월 5일 4면(석간)에 게재된 ‘독도여’는 ‘울릉도시초 5’에 해당하는 이 연작시의 마지막편에 해당하는 셈이다. ‘독도여’뿐만 아니라 나머지 ‘울릉도시초’ 4편의 시 역시 이번에 처음 존재가 드러난 작품들이다.
홍 연구위원은 “청마가 조선일보에 게재했던 일련의 시들을 보면 울릉도와 독도를 직접 다녀오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내용들”이라며 “특히 ‘독도여’를 보면 ‘독올 불모한 암석만의 편토’라고 독도를 묘사하고 있는데 돌섬에서 유래된 독도의 풍경이 너무나 세밀하다”고 말했다. 참고로 한국산악회는 1956년 7월 27일부터 2주간 학생 해양훈련을 진행하면서 울릉도·독도를 답사했었는데, 당시 산악회 회장이었던 홍종인 전 조선일보 주필은 관련 답사기를 1956년 8월 22일부터 8회에 걸쳐 조선일보에 기고한 바 있다. 당시 행사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 교수, 기자 등도 참가했었다.
두 번째로 ‘독도여’는 청마의 초기 시에 나타난 ‘절망과 고통’을 독도에 투영한 것이 특징이라는 평가다. 유치환 시인은 고독과 유랑 과정에서 나타난 절망과 고통의 삶을 수용한 시인이었다. 유치환만큼 국내외의 많은 곳을 떠돌아다닌 시인은 드물었다. 유치환은 시집 ‘생명의 서’(1947년 5월) 서문에서 “나는 시인이 아닙니다. 만약 나를 시인으로 친다 하면 그것은 분류 학자의 취미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요”라고 말했다. ‘청마시집’(1954년 9월)’ 서문에서는 “오늘이야말로 인간은 그의 양지(良知)와 선성(善性)으로서 이 절대한 허무의 의지를 정시(正視) 인정하므로 진실한 자신의 길을 택하여 앞날을 설계하여야 될 것이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독도여’에는 “무슨 저주가 이 같은 절해에 너를 있게 하였던가”라며 특유의 절망과 고통을 담았다.그의 삶도 비슷한 면이 있다. 청마는 1967년 2월 13일 밤 9시30분 예총 모임에 참석했다가 부산시 동구 좌천동 앞길에서 버스에 치여 세상을 떴다. 생전에 “일본 제국주의 기점 같은 거리 같아서 싫다”던 ‘부산의 거리’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러한 비극을 예감한듯 그의 작품 곳곳에도 허무함이 녹아 있다.“…지극히 허전한 시간이 있다…그러면은 너는 오늘 이 시간까지를 진실로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왔으며 또한 살아있는지 벼랑 끝에 딛고 선 절망의 공허감에 사방 잇발을 갈고 내딛는 쇠바퀴에 반드시 두개골(頭蓋骨)을 부딛고 말리라”(1953년·예루살렘의 닭)세 번째로 전문가들은 ‘독도여’에 현실의 아픔을 노래하는 청마 특유의 주제의식이 담겼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청마는 1930년 후반 즈음에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1950년대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일제강점기 주권을 빼앗긴 아픔, 광복 전후의 혼란, 한국전쟁 같은 현실적 아픔과 고난은 그의 시를 관통하는 주제다. 치열한 시대를 살았기에, 그의 작품도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특히 1948년 발간된 시선집 ‘울릉도’에 실린 시 ‘울릉도’는 광복과 미래에 대한 기쁨, 조국과 겨레에 대한 뜨거운 사랑, 불의와 부정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하나로 응축한 걸작으로 평가받아 왔다.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錦繡)로 구비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튀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지나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의 사직(社稷)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올 적마다/ 어린 마음의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1948년·울릉도)이번에 새롭게 발굴된 ‘독도여’ 등 청마의 ‘울릉도시초’ 는 내년 3월 동북아역사재단이 출간하는 ‘광복 후 독도와 언론보도 3: 1955~1962년의 독도’에 실릴 예정이다.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
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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