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재단 日 검정교과서 분석 세미나
한국 관련 기술 25종, 지도 1종
“독도는 주인 없는 땅 선점” 주장
억지 논리보다 양적 확대에 치중
한국과 국제 법적 공방 등 서술
후세에 향후 대응 방안 등 유도
위안부 논란은 강제성 불식 집중
종군 삭제해 군·정부 책임 희석
징용, 강제성 단어인 ‘연행’ 없애
‘동원됐다’·‘보내지다’ 등으로 대체지난 3월 30일 서울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동북아역사재단 및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주최로 2022년도 일본 고교 검정교과서 내용 분석 전문가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이들은 세미나에서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일제의 강제동원 관련 서술을 분석하고 문제점과 대응책을 논의했다. 뉴시스
“교과서별로 어떤 기술을 할 것인가가 완성됐다.”
일본 정부 고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 결과가 나온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은정태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연구위원이 ‘2022년도 일본 고등학교 검정교과서 내용 분석 긴급세미나’에서 독도 관련 내용을 분석하며 한 말이다. 일본사 과목부터 세계사, 지리, 정치경제 과목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이고 체계적으로 독도 영토주권 침해를 가한 것을 두고 한 평가였다.
이번 교과서 검정 결과는 아베 신조 총리 정부와 그 후신 정부가 ‘각의’ 결정까지 해가며 완성한 우익 주도 역사왜곡의 완성판이다. 정부가 검정을 통과시킨 교과서들에는 일본군‘위안부’, 불법적 강제‘징용’, 독도 영토 주권 침해라는 한국 관련 3대 이슈에 대해, 각 이슈 핵심을 정확히 겨냥해 부정하는 방향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역사왜곡이 드러났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동북아역사재단 및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공동주최로 열린 이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한국 관련 내용이 왜곡 기술된 일본 교과서 25종과 교재인 지도 1종, 총 26종을 분석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독도→시각적 왜곡과 체계화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영유권은 ‘무주지선점에 따른 고유영토론’으로 요약된다. 아무 주인 없는 땅(무주지)에 먼저 가서 1905년 영토로 확정한 것으로 원래부터 일본 영토라는 뜻이다. 물론 이는 억지다.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다. 무주지가 아니었고, 태정관지령(1877) 등 일본 사료에도 우리 영토였다는 증거들이 제시돼왔다. 하지만 이번 교과서 검정 결과에서 독도에 대한 일본 기존 주장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억지 논리는 더 발전시키지 못했지만, 양적으로는 독도 기술을 크게 늘렸다.
왜곡된 교육과 대응 방안 제시까지 각 과목별로 체계화한 점도 눈에 띈다. 일본사와 같은 역사과목에서는 1905년 편입 경위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정치경제 과목에서는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어 일본 정부가 평화적 해결을 위해 국제사법재판소 공동제소를 제안하고 있으나 한국이 거부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쓴다.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전제한 뒤 학생들이 앞으로의 ‘해결 방안’을 생각해 보도록 유도하는 교육이다.
은 위원이 “일본사는 편입경위를 담고, 지리는 편입경위와 고유영토론, 한국의 불법점거까지 가르치며, 공민과 정치경제는 경위, 고유영토론과 한국의 불법점거, 국제법적 해결수단 강구 모두를 기술하게 한다. 독도영유권 기술은 이것으로 (전체적 흐름이) 완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일본 교육부에 해당하는 문부과학성이 2023년부터 사용될 고등학교 2학년 이상 사용 교과서 239종에 대해 검정 심사를 통과시킨 것으로 알려진 지난 3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독도체험관에서 관계자들이 독도 모형을 살피고 있다. 뉴시스
이번 검정에서 새로 발견된 특징은 ‘시각화’다. 독도 일본 영토 표기가 없던 지도책에 시마네현 소속 표기를 선명히 했고, 지리 관련 과목에 독도 지도가 대거 상세히 삽입됐다. 은정태 위원은 “(역사왜곡이)지도에 표기된 것이 인상적이다. 시각적으로 시마네현 소속으로 확정적으로 만들었다. 시각적으로 지도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압도적일 것”이라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기술→군관여·강제성 부정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군의 관여’와 ‘강제성’이다. 김학순 할머니 최초 증언을 기준으로 약 30년간 생존자들이 요구한 것은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였고, 일본은 정부가 한 것이 아니라 민간이 한 일이고 강제성도 없었다고 억지주장을 펴며 회피했다.
이번 검정 결과는 교과서 내에서 일본군 관여, 강제성이 서술된 부분을 삭제하는 데 집중됐다. ‘종군’, ‘연행’이란 단어를 삭제한 것이다. 집필자 대부분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을 써왔는데 ‘종군’을 삭제하고 ‘위안부’로만 쓰게 한 것은 군과 정부의 책임을 희석하는 행위다. ‘연행’이란 일본 국어사전에서 본인 의사에 상관 없이 데려가는 것이라고 나온다. 우리는 일본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하는 ‘징용’이나 ‘동원’ 표현에 ‘강제’를 붙여 강제성을 표현해왔다. 우리가 ‘강제징용’, ‘강제동원’으로 드러내려는 강제성을, 일본 집필자들은 ‘강제연행’이나 ‘연행’이란 표현으로 드러내왔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에 ‘연행’이란 표현을 삭제함으로써 강제성을 부정했다.
조윤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은 “위안부는 있었으나 일본 정부가 책임져야 할 위안부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본심”이라고 지적했다.
2015년 12·28 한·일합의에 대해 일방적으로 서술된 교과서들도 나왔다. ‘2015년에 일·한 양정부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에 합의했다’고 했다.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강제성·불법성 부정
강제징용 문제의 핵심은 강제성과 불법성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배상을 요구하며 법적 책임을 지게 하고 2018년 우리 대법원 판결까지 이끌어내며 싸운 이유는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강제성과 불법성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런데, 일본군 ‘위안부’ 관련 서술에서와 마찬가지로, 강제성을 띤 단어인 ‘연행’, ‘강제연행’ 표현이 사라지고 ‘동원됐다’, ‘보내지다’ 등으로 대체했다. 국가총동원법 징용령에 의거해, 일본 정부가 일본 국민을 합법적으로 징용한 것으로 주장하려는 저의가 반영된 것이다.
◆집필진들 간접적 반발·저항
전문가들은 교과서 집필진들의 양심에 따른 집필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점은 나름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검정 통과 교과서들의 서술이 전반적으로 악화한 것은 맞지만, 정부 개입 속에서도 각 집필진이 간접적으로나마 학생들과 교사들이 일본군‘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에서 군 관여와 강제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한 부분도 상당했다.
가령 짓교출판사의 일본사탐구 교과서에는 ‘일·중전쟁 중 문화의 통제’ 부분에 등장하는 ‘위안소’ 단어에 각주를 달아 ‘일본 군의 관여 하에 설치·통제된 전쟁 지역의 확대와 함께 확산되었다. 일본인 식민지 점령지의 여성이 위안부로 장병의 성 상대를 강요당했다’고 써두었다.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연구위원은 “(본문에 쓰지 못한 이유 등으로) 일부러 많이 써 놓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야마카와 출판사 역시 각주를 달아 ‘(‘위안부’는) 강제되기도 하고, 속아서 연행되기도 했던 예도 있다’고 써두었다.
다이이치 출판사 교과서 중에서는 ‘강제연행’을 살려 두고 각주에서 ‘2021년 4월 일본 정부는 전시 중의 조선반도에서 노동자가 온 경위는 여러 가지로, ‘강제연행’이라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각의 결정을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연행에 해당하는 사례도 많다는 연구도 있다’고 기술한 부분이 있었다.
이 같은 사례들은 양국 시민사회단체들과 출판사들의 교류와 한·일 공동 교재 집필 운동 등의 성과로 보인다. 동시에 역사교육자, 집필자들의 양심마저 짓밟는 일본 정부의 교과서 개입의 부당성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양국 공동교재, 부교재 집필 등 지속적 교류 필요성과 함께, 전략적인 용어 정리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혜인 위원은 “한국에서 좀더 명료한 개념정리가 필요해졌다. 우리가 ‘강제동원’이란 말을 쓰고 있지만, 일본이 전시동원 체제 속에 징용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뜻으로 ‘동원’을 사용하고 있으니 일본 각의 결정에 등장하는 ‘동원’과 우리의 용어가 어떻게 다른지 등을 좀더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출처 : 세계일보(https://ww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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